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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컬럼 - 김동석의 미국보기  
작성자 yiharo
작성일 18-10-2010
ㆍ추천: 0  ㆍ조회: 23464    
아시안계 백악관 비서실장- 김동석
 
아시안계 백악관 비서실장 ‘피트 라우즈(Pete Rouse)’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시카고의 기금모금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던 오바마의 탁월한 연설 솜씨에 반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자로 오바마를 내 세우기 위해서 당시 민주당의 상원을 대표하고 있던 ‘탐 대슐’의원에게 오바마를 소개했다. ‘탐 대슐’의원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으로 보스톤 전당대회에서 오바마는 일약 전국적인 정치스타로 떠 올랐다.  




그 해 오바마는 일리노이를 대표하는 연방상원에 진출하지만 그를 연방급 정치인으로 이끌어 낸 탐 대슐 의원은 예상을 깨고 선거에서 탈락하게 된다. ‘탐 대슐’은 자신의 선거패배로 인한 충격보다는 ‘바락 오바마’라는 굵직하고 신선한 정치 유망주에 흥분했다. ‘탐 대슐’은 중앙정치권을 떠나면서 워싱턴의 초년생인 오바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배려했다. 100명의 상원의원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그의 수석 보좌관인 ‘피트 라우즈(Pete Rouse)'를 오바마에게 소개했다.




’피트 라우즈‘는 1986년 사우스 다코타 출신의 시골뜨기 초선의 ’탐 대슐‘의원을 맡아서 단번에 민주당 상원의 중심인물로 만들어 낸 리더십의 제조기로 이름난 보좌관이다. 30년 동안 워싱턴서 잔뼈가 굵은  ’피트 라우즈‘는 당시 대슐 의원의 보좌관을 끝으로 워싱턴을 떠나려고 했지만 대슐의 권고와 오바마의 삼고초려로 그는 다시 상원에 머물게 된다. 오바마 의원이 그를 보좌관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상원의 '피트 라우즈'팀이 오바마를 워싱턴으로 영입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피트 라우즈‘는 과묵하고 신중한 그리고 100가지를 챙기는 상원 보좌관이다. 워싱턴 의회에선 그를 가리켜 101번째의 상원의원이라고 부른다.




 캐피톨(의사당)의 제 방(사무실)도 잘 찾아가지 못하는 워싱턴의 초년생 ‘바락 오바마’를 인수받은 ‘피트 라우즈’는 그에게 워싱턴을 가르쳤다. 2005년에 워싱턴에 입성한 오바마를 위해서 피트 라우즈는 ‘전략계획(The Strategic Plan)’이란 문서를 작성했다. 오바마를 위한 워싱턴 정치와 연방 상원의 운영방식에 대한 교과서다. 이 문건을 기초로 워싱턴 생활을 익힌 오바마는 피트 라우즈의 가르침에 힘입어 곧바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상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행보에 관한한 오바마는 피트 라우즈의 말 잘 듣는 모범학생이었다. 피트 라우즈는 오바마에게 민주당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를 공격하도록 하는가 하면 개혁성이 부족한 의회 윤리개혁안에 대해서는 반대투표를 하도록 했다. 또한 미디어를 끌고 다니며 막강한 정치파워를 발휘하는 에드워드 상원의원과 2000년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조셉 리버맨 의원등과 함께 정치행보를 하도록 해서 전국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또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의회 청문회 과정에서 강력하게 비판을 제기하고 반대투표를 하도록 함으로써 오바마의 진보적 선명성을 민주당원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친숙해진 오바마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하게 높아졌다.




  ‘피트 라우즈’는 30년 동안 의회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탓에 ‘101번째 상원의원’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의회에 대한 지식과 각종 정치적 기법이 워낙 능수능란한 탓에 100명의 상원의원에 이어 실제 상원의원에 맞먹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에서 나온 별명이다. 이처럼 탁월한 역량과 정치활동으로 그의 연봉은 특별수당을 제외하고서도 17만 달러까지 받았다. 그는 9.11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2001년 10월15일 대슐의원 사무실로 배달된 탄저병 소포로 인해 병원에서 감염 검사를 받은 바로 그 장본인이다.




피트 라우즈는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당파적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 워싱턴 의회는 초당적으로 미국과 세계를 위한 진정한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오바마의 지적은 곧 피트 라우즈의 주장이기도 하다. 피트 라우즈의 아이디어대로 오바마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 우리는 원칙을 가진 타협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피트 라우즈는 [ 변화 와 희망]이란 오바마의 정치철학을 만들어 냈다. 2008년 대통령선거전에 이것이 빛을 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10월1일 오바마 대통령은 사임하는 램 이매뉴엘 백악관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대통령의 선임 정치고문인 ‘피트 라우즈’를 임명했다. 1946년생인 피트 라우즈의 전체 이름은 ‘피트 미카미 라우즈(Pete Mikami Rouse)' 로 일본계2세이다. 피트 라우즈의 어머니는 동경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온 일본인이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미국이 일본계 이민자들을 포로로 수용했던 애리조나의 인턴멘트 캠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7년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최초의 아시안계 백악관 비서실장인 셈이다.  2007년 4월 25일,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주한인 동포들이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저지하기 위해서 워싱턴을 방문했다. 총리를 불러서 결의안을 막으려고 한 사람은 바로 일본계 상원의원인 하와이 출신의 ‘다니엘 이노우에’란 것이 드러났다.




이노우에는 워싱턴 정가에선 “없는 것 같이 있는 바위산”으로 소문난 50년 상원의원 거물이다. 그의 영향력은 케네디를 능가한다고 소문났다. 이노우에 의원이 왜 이것을 가로막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필자는 오바마 의원의 사무실로 바로 이 ‘피트 라우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노우에 상원의원은 같은 일본계(2세)인 ‘피트 라우즈’와 가까운 사이로 들었기 때문이다. 피트 라우즈는  필자에게 이노우에 의원은 미국은 오끼나와의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을 잡아다가 아마존에 내다 버린 사건부터 해결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고 말해 주었다.  

 

 피트 라우즈는 오바마 캠프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챙기는 역할을 했지만, 그래서 ‘존 포데스터’와 함게 공동 인수위원장을 맡았지만 미디어의 그늘만을 고집했다. 신중하고 과묵한 그의 특별한 스타일 때문이다. 전임 비서실장이 저돌적이며 강한 개성의 톡톡 튀는 스타일인 것과 비교해서 피트 라우즈 비서실장은 끝까지 인내하면 설득하고 설복시키는 인내의 참모 형이다.




그는 타협하지 못할 안건은 세상에 없다고 여기는 협상론자다,  오바마의 초반기는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야 가능한 금융개혁과 의료보험개혁 이 목표였다. 이제부터는 의회와 조곤조곤 협상하면서 재집권을 준비해야 한다. 피트 라우즈로 인해서 워싱턴 정국이 좀 안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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